날머리에는 대교아파트가 있다. 산에서 도로까지 밭 사이로 난 농로를 따라 간다. 언니는 자꾸 “이 근처였던 것 같다”며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아는 곳이에요?”하고 물으니 “우리 저번에 여기서 교육받았잖아. 기억 안 나?”하고 묻는다. 그제야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 같다. 숲길등산지도사 수업을 들을 때 양주에서 등반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곳이었나 보다.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리송하다. 좀 더 내려가다 보니 낯익은 길이 보이고, 언니 말처럼 대교아파트 버스정류장이다. 불곡산 채석장이었나? 좀처럼 기억이 나질 않는다. 같이 교
초입은 자작나무숲이었다. 갑자기? 다소 뜬금없는 자작나무의 등장이었지만 오밤중에도 자작나무숲은 그 분위기가 일품이었다. 잔잔한 새벽 공기가 분위기를 더한다. 이런 곳에 자작나무가 있다는 것에 신기해하며 오르는데, 군부대 암벽등반 훈련장이 나오며 분위기가 달라진다.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듯 시설물 주위로 철망이 둘러 있다. 등반 훈련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라 슬쩍 보고는 “난이도가 약하네” 농담을 하며 옆을 지난다.“암릉은 언제 나오는 거야?”바위산으로 유명한 불곡산이라 암릉은 언제쯤 나오는 걸까 궁금했는데, 질문에 화답하듯 곧바로
요즘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한북정맥 끝났어?” 혹은 “언제 끝나?” 한북정맥에 대한 물음이다. 인터넷 연재로 매주 2편씩 글이 올라가고, 지면에도 매달 연재되고 있다 보니 다들 궁금한 모양이다. 연초부터 한 달에 한 번꼴로 산행을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내용이 방대하다 보니 매일 걷는 걸로 오해하는 분들도 있고, 주말마다 산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분들도 있다. 골자는 언제까지 걷는 거냐는 것인데, 현재는 능선으로 이야기하면 우이암까지 걸었고, 돌아오는 주말 파주 장명산까지 남은 길을 걸으면 마무리된다. 주요 구간을 모두 지나고
산을 걷는 건 크게 부담이 없는데, 왜인지 도로는 썩 반갑지 않다. 비슷한 이유에서 우이동에서 도선사 오르는 길이 그렇게 힘들게 느껴지더라. 하산 내내 원망 섞인 눈으로 바라본 골프장을 지나고, 마을길 골목을 누비며 여러 개의 버스정류장을 지난다. 버스 정류소를 지날 때마다 ‘그냥 버스를 타버릴까?’ 싶다가도 그래봐야 1시간이면 끝날 텐데 싶어 걷기로 했다. 포장도로부터는 애써 정맥길을 따지지 않고 큰테미산 입구까지 최단코스로 보이는 길로 걷는다. 이미 원래의 산길을 다 밀어버려서 어디가 정맥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데, 도심의 시가지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른 채 수연 언니와 나는 잠들었다. 지난밤 내가 밤새 수다스러웠던 탓에 둘 다 잠이 고팠을 테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금세 곯아떨어졌다. 상태를 보니 모르긴 몰라도 내가 코를 엄청나게 굴었을 것 같다. 오전 6시쯤이었을까? 화장실이 가고 싶어 몸을 일으켰다. 시간이 이른 것 같아 다시 눈을 감았다. 어제의 여독이 채 풀리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이곳 축석령에서 샘내고개까지 15km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거리라 여유가 많다는 생각에 좀 더 자고 싶었다. 난이도가 수월하다는 생각에 더
얼마나 올라가야 할까? 그래도 꽤 올라가야겠지? 생각하며 오르는데 금세 정상에 닿았다. 해발 380m의 노고산은 허무할 정도로 낮은 산이었다. 물론, 우천 속에서 감사할 따름이다. 마침 고모리 쪽에서 올라오는 등산객이 있어 사진을 부탁드렸다. 오늘만 벌써 네 번째 만나는 사람이다. 주말인데다 날이 많이 풀려서인지, 서울 근교라서인지 오늘은 등산객과 자주 마주친다. 부슬비 내리는 와중에도 정성껏 사진을 찍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오늘 산행에서 수연 언니와 함께 찍은 처음이자 마지막 사진이다. 노고산은 어떤 사람이 늙은 고모님을 모시고
탱크 방호벽을 지난다. 강원도 군인 마을 같은 느낌이 들어 신기했다. 인제, 원통, 천도리 같이 휴전선이 가까운 동네에서 많이 보던 군사시설물인데 이곳에서 보니 신기했다. 경기도라는데 왜인지 강원도 같은 느낌이었다. 외곽이라 그런지 고물상이 많았다. 재활용 쓰레기를 압축해서 모아둔 것이 알록달록하니 하나의 팝아트 작품을 보는 것 같아서 신기하다며 재잘댄다. 고물상 처음 보냐는 언니의 질문. 작은 것에 신기해하는 나를 보며 재미있다는 듯 말하는 언니다. 내가 살던 동네의 고물상은 폐지 줍는 어르신들이 모아 놓은 작은 고물상이었다. 그
불정산 전후로 송전탑이 이어진다. 송전탑을 여러 개 지나고, 억새로 둘러싸인 헬기장을 지나면 국사봉이 나온다. 왕수산악회 이름이 새겨진 국사봉. 오늘 처음 만나는 정상석이라 더욱 반가울 따름이다. 앉은키 정도 되는 작은 사이즈에 앉아서 인증샷을 찍어본다. 힐링로드에서 놀멍쉬멍 힐링을 하며 걸었으니 국사봉에서는 찍을 것만 찍고 곧바로 하산을 시작했다. 오늘 걸어온 길 중에서 가장 가파른 편이다. 왼쪽 다리에 이물감이 심하게 느껴진다. 컨디션이 썩 좋지 않은가 보다. 출발할 때부터 불편하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심상치 않다.
오늘도 ‘곰탕산행’이다. 흐린 날씨 탓에 보이는 풍경 없이 희멀겋다고 하여, 일부 등산인들이 그렇게 부른다. 날이 을씨년스러운 것이 백운산을 지나던 날이 생각난다. 지나온 한북정맥이 까마득히 예전 일처럼 느껴진다. 백운산의 추억에 젖어 이야기 나누는데 갑자기 암릉과 밧줄이 나오더니 분위기를 달리한다. 정면의 커다란 바위를 기준으로 좌측은 낙엽이 만연한 가을 풍경이고, 우측은 눈으로 뒤덮인 한겨울 풍경이다. 정말 만화에나 나올 법한 그림이다. 실제로 그 풍경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다. 잔뜩 낀 안개를 타고 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
아치산을 지나 명덕삼거리라 불리는 도로에 닿았다. 도로와 만나기 전, 철책과 방향을 달리하며 비탈이 심해지는 구간이 있다. 딱 그곳을 지날 때만 비탈이 심하고 폭이 좁아 걷기가 조금 불편했던 것 외에는 전체적으로 길은 참 좋았다. 포천시 내촌면 이정표를 바라보는 쪽에서 좌측은 서파교차로, 우측은 포천 시내 방향이다. 그대로 직진하다가 우측 산길로 오르면 한북정맥이고, 그 길을 따라 조금 더 들어가면 천마지맥으로 통한다. 한북정맥 종주를 준비하며 자료 조사할 때 명덕삼거리 위치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 네이버 지도에는 나오지 않는 명칭
트랭글이 “삐삐” 소리를 내며 울리기 시작한다. ‘아… 길을 벗어났구나.’ 처음 들어보는 소리지만 직감적으로 경로를 벗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늘 처음 써보는 트랭글 앱의 ‘따라가기’ 기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트랭글 따라가기 기능이란 선답자의 코스를 지도에 띄워주고 그 코스에서 이탈하면 알려주는 기능이다. 사실 이러한 기능이 있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트랭글을 사용 한지도 벌써 5년은 넘은 것 같은데 다른 이들이 들으면 놀랄지도 모르겠다. 나이는 96년생인데 기기와 친하지 않은 탓에 사용이 조금 더딘 편이다.
밤이 그리 길지 않은데 잠은 오지 않는다. 피곤한데 잠이 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짬뽕 포장을 기다리며 입이 심심해서 믹스커피를 한 잔 마셨는데 그 영향인 듯하다. 카페인에 민감한 편이라 평소 4시 이후에는 커피를 잘 마시지 않는데, 기계에서 커피를 뽑는 언니를 보며 나도 아무 생각 없이 마셔버렸다. 오지 않는 잠을 기다릴 바엔 수다라도 실컷 떨어보자! 자정이 넘고, 두 시가 다 되도록 수다에 심취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사실 언니는 조용히 있으면 금방이라도 잘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내가 이야기를 이어가
반차를 쓰고 의정부역으로 달려왔다. 이제는 이곳이 전혀 낯설지 않은 느낌이다. 두 번째 찾았을 뿐인데 왜 이리 친근하게 느껴지는지. 아마 한 달 뒤에 다시 찾을 때는 내 집 앞마당 같을지도 모르겠다. 지난달에는 출구를 헷갈려 지하상가로 내려갔는데, 오늘은 헤매지 않고 길을 잘 찾아 나왔다. 출구에서 수연 언니가 기다리고 있다. 거의 한 달 만의 조우다. 어쩌다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매일 보는 것도 아닌데 마치 어제 본 듯 익숙한 얼굴이다. 전화를 거의 매일 하다 보니 어제 만난 듯한 느낌이 드는 게 당연할지
한북정맥의 정식 코스는 운악산 서봉에서 동봉을 지나 절고개를 거쳐 철암재, 화현고개로 내려오게 된다. 사전에 준비가 미흡했던 터라 무대포식으로 진행하다 보니 마지막 등로를 잘못 선택해 엉뚱한 곳으로 내려와 버렸다. 세세하게 준비해야 했는데 대충 ‘00산’ 다음에는 ‘00산’. 정도로만 익히고 떠난 길이라 부족함이 많았다. 동봉을 지나 철암재로 내려가야 한다는 정보를 미리 알고 있었다면 무조건 그리 진행했을 텐데. 예상보다 길어진 18시간 연속 산행에 시간에 쫓기듯 운행하며 판단하다 보니 제대로 길을 찾을 만한 여유가 없었다. 긴가민
가는 길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다행히 약간의 된비알이 반복된다. ‘그래, 이런 길이면 갈만하네.’ 안심하며 느리지만 꾸준히 진행하려 노력했다. 멘탈을 조금씩 되찾아 가고 있다.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청계산과 길매봉처럼 암릉의 연속일까봐 마음을 졸이던 참이다. 원통산에서 1km 남짓 내려오면 이후부터 오르막이 많아진다. 속도가 더뎌진다. 특히 오르막에서 속도가 붙지 않는다. 언니는 오전에 걷는 것보다 빨라진 것 같다고 한다. 나중에 지나온 시간을 확인해보니 언니 말이 맞았다. 빨라진 건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느려진 속도는 아니
길마봉과 길매봉. 최근 설치된 국가지점번호 이정표에는 길마봉이라 표시되어 있고, 포천시에서 세운 오래된 이정표에는 길매봉이라 되어 있다. 내가 주로 보는 네이버 지도에는 길마봉이라 되어 있고, 트랭글에는 길매봉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정표를 설치한 주체나 시기가 달라서 생긴 해프닝인지 이정표마다 표시하는 이름이 달라 혼선이 생긴다. 정확히 어느 것이 맞는 이름인지 모르겠으나 어떤 쪽으로든 통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암릉으로 된 내리막이 이어진다. 노채고개로 내려가는 길 역시 급경사길과 바윗길, 스테이플러처럼 생긴 쇠로 된 발받침이
갑자기 암릉에 계단 오르막길이 나타난다. 이번 산행 코스가 국망봉에서 서파교차로까지라고 했더니, 누군가 “암릉이 끝내주는 코스”라고 했다. 왜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지 궁금하던 참이었다. 이제 시작인 걸까? 남은 길 역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쉬운 등로일거라 생각했는데, 우리 앞에 닥친 현실은 괴리감이 컸다. 이러면 곤란한데 말이다.청계산을 600m 남겨두고 이정표와 ‘한북정맥 자원실태조사’ 안내문이 나온다. 실제로 걸어보니 백두대간만큼이나 길이 좋다. 다른 정맥이나 기맥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람이 많이 찾는 곳이라 그런지 어떤 식으로든
백호봉을 지나서 밥을 먹었다. 양지바른 곳에 나무 의자 두 개가 마주 보고 놓여 있어 밥을 먹기 딱이었다. 발열식량 3봉지를 꺼내 식량 안팎으로 250㎖ 정도씩 물을 붓는다. 2개를 먼저 만들다 보니 발열식량에 물을 너무 많이 사용한 것 같아서 다른 하나에는 발열팩 위로 눈을 넣었다. 곧장 잘 끓어오르길래 식량 3개 모두 눈을 좀 더 넣어 끓였다. 완성되기만을 기다리는데 끓는 폼이 영 신통치 않다. ‘어랏, 이상하다? 분명 지난번에는 잘 익었는데….’ 지난번 복계산∙복주산 산행에서도 눈으로 끓인 경험이 있었다. 경험에서 나온 확신으
서서히 날이 밝아온다. 주위가 파랗게 밝아진다. 고도가 높아진 만큼 공기의 온도가 확연히 달라진다. 앙상한 가지만 놓인 능선길에 올라서니 바람이 거세진다. 피부에 닿는 공기는 1시간 전과 무척이나 달라져 있다. 바람을 맞을 때마다 피부를 콕콕 쑤시는 느낌이 든다. 이미 해가 떴을 시간이지만 여태 제대로 된 해를 보지 못했다. 주위가 밝아지는 걸 보며 짐작했을 뿐 햇살이 전혀 닿지 않는 길이다. 국망봉의 높은 봉우리에 태양도 그 몸집을 숨긴 모양이다. 정상까지 오르는 길에 한 줌의 햇빛도 들지 않는다.2시간 정도 걸었을까? 무인대피소
새벽 3시, 언니가 샤워하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알람이 울리고, 언니가 일어나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데 그 짧은 새에 잠시 잠들었나 보다. 밤새 잠을 못 잤다고 하는 나의 하소연에 언니 역시 깊게 잠들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 것 치고는 “드르렁 드르렁”하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데…. 이야기하니, 못 잔 건 아닌데 깊게 잠들지 못했다고 강조하는 언니다. 샤워하고 나름의 단장을 하는 언니를 구경하며 나는 겨우 몸만 일으켜 눈꼽만 떼고, 얼굴에 선크림을 바른다. 언니는 아침에 출발하기 직전에 꼭 샤워를 해야 하는 스타일이라고 했다.